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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 베버리지

[정보] 역사 상 '아편전쟁'의 원인은 '홍차' 때문이었다??

by 쉐어메이트 2017. 12. 22.

* 본 게시물은 #차마시는남자가 직접 작성 & 편집한 내용입니다. 





[정보/역사]

역사 상 '아편전쟁'의 원인은 '홍차' 때문이었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Google)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역사 시간에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가 바로 '아편전쟁'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국(당시,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서 발발한 사건으로 과도한 세금법으로 인해서 중국의 봉기가 시작되어버린 사건이다. 


18세기 중후반 미국에서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하고,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 이후 영국은 차의 대한 조세법을 대폭 수정하여 과세에 대한 부분이 많이 개정되었었다. 당시 '트와이닝'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 보스턴 차 사건 이전에는 자사의 티 판매량이 연간 600만 파운드였으나, 이 후 연간 1600만 파운드도 급증하였다. "




그렇다. 차에 대한 세금이 완화되고 많은 양의 차들이 수출 및 소비되면서 차의 총 유통량은 거대해졌다. 그 만큼 차 시장 또한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영국이 차를 수입하는데에 대금을 지불하는 방법은 '은'을 물물교환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수입량이 점차 급증하자 은 또한 바닥나기 시작했고, 영국의 국고가 빈털털이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중국은 '영국인들은 홍차 없이 못사는 구나!' 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배짱 좋은 장사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영국은 국고가 줄면 국력이 약해진다는 판단에 무리한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바로 '아편'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1만여상자가 수출이 되었으나 불과 4~5년뒤에 3배가량 뛴 4만여상자가 중국으로 반입되게 된다. 이로 인해, 많은 중국인들은 아편에 중독되어 버렸고, 아편을 구입하기 위해서 다시 '은'을 대금으로 지불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이러한 방식으로 '은'을 다시 회수하는 방법을 사용해왔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Google)




하지만, 중국 청나라에서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8대 황제인 '도광제'는 아편금지령을 선포하였고, 이후 관련 책임자로 임명된 '임칙서'가 광둥성 광저우에 유입된 모든 아편을 수거하여 소각하는 임무를 달성한다. 이를 계기로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19세기 중반(1840년도)에 영국은 중국으로 해군을 출전시키고, 중국은 부득이하게도 전쟁에서 패하게 된다. 그 때, 피해를 입은 도시가 저장성의 항정우, 닝보, 광둥성의 마카오, 푸젠성의 샤먼 그리고 항구도시 상하이가 있었다. 중국이 대패를 하고 난 후, 영국은 '난징조약'을 이유로 홍콩을 식민지로 삼았고, 위 다섯 곳의 도시의 항구를 강제로 개항하여 강제 무역을 개시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영국의 행태는 오래가지 못했고 청나라가 미국과 프랑스에게 영국과 동일한 조건으로 조약을 체결하자, 홍차에 관해서 자연스럽게 자유 시장 경쟁 체제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Google)





이렇게 역사적으로 큰 사건인 '보스턴 차 사건'과 '아편전쟁'의 시발점에 '홍차'가 배경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놀라운 사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시 서양은 차의 관한 문화가 부유층부터 왕실까지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고 이로 인해서 여러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차마시는남자's 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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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문화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도 여러가지 차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일본강점기 시절에 한국의 정신을 흐트리기 위해서 모든 문화와 언어에 대한 강제적 억압이 있을 당시에 '차' 문화는 일본에게는 소멸 시켜야하는 문화 중 하나였을거라 생각한다. 그로 인해, 한국의 토종 차나무는 많이 소실되었고 일본의 수종인 '야부키타종' 차나무가 심어지면서 현재 우리나라에 녹차가 생산되어진다고도 한다. 물론, 일본군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곳에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순종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다고도 하니 다행이지 싶다. 


'차' 라는 것은 단순 마시는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뿐만 아니라 한 국가의 문화로 자리 잡힐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진 음료라고 본다. 커피가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차에 대한 장점은 모든 국민이 알고 있지만, 마실 수 있는 장소와 기회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표하고 싶다. 앞으로도 차가 지속적으로 안내되고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늘 이야기는 차가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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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차마시는남자 (인스타그램 : @off_the_boundary)